현재 길통이는 경부고속도로 428km 구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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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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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
0903
나를 만들어 준 경부 고속도로
울산에서 혼자 타지에 올라와 독립 한지도 10년차..! 처음 올라 왔을 때 시작으로 전문대,야간대 등 많은 절차가 지났지만 수원에 취업함으로써 오산에 거주 하며 왔다갔다 하던 나에게 있어 경부 고속도로는 뜻 깊다. 처음 취직 후 지금은 벌써 7년차가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 취업 후 혼자 오산에 살면서 수원을 왔다갔다 했을 때 얼마나 수많은 생각을 했을까..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경부 도로를 달리며 두렵고 막막하고 힘들고 지치고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하고.. 나의 20대 초 중 후반을 그렇게 경부 고속도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을 다시 잡고 성장 해 온 것 같다. 경부 도로 위를 달리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생각 하던 그때의 그 고민들,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의 수많은 고민과 결정이 지금 나를 있게 한 건 아닐까 싶다. 현재는 회사 근처에 거주 하고 있어 도로 위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짧지만 한편으로 그때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고민이 너무 많아 머리가 터지는 날에는 아무 생각 하고 싶지 않을 때 경부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가수다. 창문을 다 닫고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면 스트레스가 절로 풀렸다. 경부 도로 위를 달리며 옆 차를 보아도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흥얼흥얼 거리고 있다. 너도 나도 경부고속도로 가수다. 우연히 경부 고속도로의 역사를 알게 되고 12조의 가치가 있다는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나 반갑고 뿌듯하고 경부 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 경부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너무나 성장이 느린 국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민과 국가 사이에서도 한 층 더 서로를 가깝게 해준건 경부 고속도로 역할도 있을 것이다. 어디든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으니.. 어쨋튼 경부 고속도로는 지금 나를 모나지 않은 어른으로, 내 삶을 만족하며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나에게 있어 아주 뜻 깊고 그리운 녀석이다.
이은*
5797
대한민국 유통경제의 핏줄이 되어준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한민국 교통환경의 고른 발전을 이뤘고 유통과 물류에도 적잖은 공헌을 해준 고속도로라고 평할 수 있는데 그 당시 기성세대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경부고속도로는 없었을 거라 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고 단일 노선으로 총 연장이 가장 긴 고속도로로 세계에 자랑할 수준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속도로라고 할수 있습니다. 곧 AI를 활용한 고속도록 톨게이트 운영시스템도 효율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자율주행차와 전기자동차의 수요 확장이 고속도로에 어떤 변화와 국민들의 호응이 기대됩니다. 저도 얼마전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지방 출장을 다녀왔는데 앞으로도 대한민국 대표 고속도로로서 명성과 수요를 충족시키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윤인*
0424
일일생할권의 출발점이 되어준 고속도로
50년전 터를닦은 고속도로는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의 일류기업을 능가하는 세계화의 밑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정보통신 등 각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있다. 육로인 고속도로뿐이 아닌 철도 항공 해상의 선박까지 시공 기술능력을 인정받아 세계로 힘차게 뻗어 나가고 있다. 무궁한 발전만 있을뿐이다. 대한민국 만만세~☆
이용*
5238
​자유로 가운데 잔디밭. 용도는?
이전 직장에서 출장을 가던 길. 자유로에 접어들자 선배가 내게 물었다. "자유로 가운데 나무도 안심고 저렇게 비워둔 이유가 뭔지 알아?" "글쎄요, 전방이니 군데군데 무기라도 묻어둔 걸까요?" 답은, 통일이 되면 차선을 늘리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그게 2003년. 16여 년 동안 곰곰히 생각해 봤다. 2020년에 드는 생각은 진짜로 통일을 하려했던 사람은 박정희 한 사람 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자유로가 이럴진데, 너도 나도 반대하는 경부고속도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경부고속도로 앞에 겸손해지고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부고속도로야, 니 덕에 이만큼 산다. 박정희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이호*
8330
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부산
1990년 3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아버지 손을 잡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던 일은 제 오랜 추억입니다. 당시 저희집은 경기도 연천군에서도 최북단으로 휴전선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그때 까진 아직 국민학교로 불릴 때였어요) 방호원으로 일하고 계셨고, 저는 막 6학년이 되었지요. 아직 해양수산부가 생기지 않았던 시절, 해운항만청에서 주최했던 행사에서 제가 입상하게 되었고, 부산해운항만청에서 시상식이 열리는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담임선생님이나 교무부장선생님과 함께 가야했지만, 교장선생님이 아빠와 아들이 여행 다녀오시라고 특별히 배려해주셔서 아버지가 출장으로 저를 데리고 연천에서 부산까지 국토를 횡단하게 되었답니다. 1990년이니 아직 가정마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던 때도 아니었기에 아버지와 부산에 다녀오는 길은 참 험난했습니다. 시상식 전날, 새벽같이 일어나 경원선 열차를 타고 의정부까지 가서 의정부 터미널에서 하루에 4번인가 있던 부산행 고속버스를 타야했습니다. 의정부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서울 외곽을 돌아서 한참만에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어요. 아버지는 그때 여기가 경부고속도로라면서 방호원으로 일하시기 전에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일하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장에서 일하시다가 막내인 제가 태어나면서 더이상 현장을 떠돌 수가 없으셔서 고향으로 오셨고, 방호원으로 일하게 되신거였어요. 고속도로 건설만했지 실제로 여기를 달려보는 것은 처음이라 말씀하시면서 참 감개무량해하셨답니다. 나중에 우리집도 차를 사면 온가족이 함께 차에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보자는 말씀도 하셨고, 중간에 섰던 휴게소에서는 뜨끈한 우동과 김밥을 사서 아버지와 요기를 하기도 했지요. 아침에 일찍 출발했지만 부산에 도착하니 저녁이어서 하루를 숙소에서 머문 뒤에 다음 날 시상식을 끝내고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고속버스 타고 의정부로, 경원선 열차를 타고 연천까지 돌아오니 밤 10시 반이었어요. 이틀간 꼬박 아버지와 여행을 다녀온 셈이지요. 90년대 아버지들은 요즘 아버지들과 다르게 조금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으셔서 아이들과 서먹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차를 사면 온가족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에 다녀오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2년 뒤에 제가 중2가 되던 해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 경부고속도로를 탈 일은 많아졌지만 그때의 추억은 까맣게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아내와 세 아이까지 저희 다섯 식구가 여름 휴가로 부산을 향했지요. 아이들과는 처음으로 가는 부산,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옥천터널을 지나서 추풍령휴게소에 짐시 멈췄는데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3월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그 날, 뜨끈한 우동 국물을 먹었던 곳이 추풍령휴게소였거든요. 90년 당시의 제 나이와 똑같은 큰 아이, 그리고 밑에 열하나, 열살 연년생으로 태어난 두 아이까지 우동을 한 그릇씩 놓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90년전 아버지도 내가 우동 먹는 모습을 이렇게 보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하더라고요. 목구멍 깊은 곳이 뻐근하면서 먹먹해졌습니다. 아내는 영문을 몰라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이더라고요.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다음엔 장모님이랑 장인어른, 그리고 저희 어머니도 모시고 온 가족이 다시 부산에 다녀오자고 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꼭 휴가를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부산으로 다녀오렵니다. 경부고속도로하면 30년전, 아버지와 함께 연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에 이용했던 고속버스와 휴게소의 뜨끈한 우동, 그리고 아들 손을 꼭 잡아주시던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유정*
5027
아들과 함께한 동행
아들이 3살정도 되었을때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광주에서 청주까지 다니게 되었는데 중간에 대전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고 청주로 수업 을 들으러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공부와 육아를 함께 하기에 아이가 많이 순했지만 그래도 쉬운일은 아니더군요 아들은 뒷자리에 앉아 종이컵 하나 쥐어주면 2시간을 갖고 놀아주어 참 고마웠었습니다 잘 놀던 아들이 어느날은 보채고 울어서 쉼터에 차를 세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자동차를 정말 좋아했어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를 왼쪽오른쪽 고개를 돌려가며 둘이 한참을 쳐다보고 나니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차를 타고 대전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아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지금은 엄마보다 훌쩍커버린 아들이지만 그때의 모습도 그리워지네요
신은*
6315
차가없던시절 버스타고 다니던 경부고속도로
아이들이 태어나고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었던 저희가족은 차가 없으면서도 등에 텐트. 보트등을 짊어매고 매년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아이들에게 해운대를 보여주려고 무거운 짐들을 실고~~ 바다로 향할때 경부고속도로가 저희에겐 가깝게 만들어준 감사한 도로였네요~~ 지금은 차도 있고 손자.손녀들과 경부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좋은 구경 좋은 음식 많이 먹고 다니네요~~ 도로 50주년 축하드립니다 항상 좋은길로 다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병*
7759
축하합니다
고속도로가 50주년을 맞이한 것에 축하를 드립니다. 저도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하였습니다 이제 더욱 편리하고 안전한 고속도로가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물론 사고는 나지 않아야 하겠지만요.
조재*
5011
경부고속도로의 추억
지금은 대전까지 세시간 안으로가지만, 어렸을때만해도 대전 시골집에 가려면 심할때는 10시간도 걸리고했던 기억이나네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속도로안에 호두과자나 각종 간식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고속도로안에 왔다갔다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길이 넓어지고 좋아져서 그럴일은 없지만, 그때의 교통체증이 왜인지 그리워지는건 왜일까요...
김중*
1706
자격증취득 시험보려고 고속도로 이용
경남 창원에서 호스피스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서울로 시험치려 가는 날 새벽 마산역에서 새벽에 승합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옛날 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보려 가던 선비들이 생각나네요! 재를 넘고 산을 넘어 한달여 간을 한양으로 과거시험보려 가던 선비들의 일화를 본적이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옛날 선비들의 과거시험은 출세길이 보장된 일생일대의 일이니 얼마나 간절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갑자기 숙연해집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믿음을 가지고 절박한 심정으로 재를 넘고 산을 넘을때는,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하여 추풍령은 넘지않았고,미시령은 잘 미끄러진다하여 넘지않았고,문경새재는 글에서 경사가 난다하여 합격(장원급제)이 될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문경새재를 즐겨 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하는 이야기를 보거나 들은적이 있어,격세지감을 느낀다.이제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가 생겨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좁혀져 서울로 시험보러 갈때도 당일 몇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하여 시험을 볼수있다니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족하나마 제 생각을 몇자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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